취미/그외

에코백으로 호보니치 커버 만들기

생강젤리 2024. 9. 4. 07:21

호보니치 플래너를 사용 중인 건 아니므로, 정확히는 A5 사이즈 플래너의 커버 만들기.
나는 Quo Vadis를 사용 중인데, A5 사이즈 플래너의 커버를 찾아 헤매다 보니, 호보니치 커버가 제일 많이 나온다.
그런데 호보니치 커버를 구매하자니 가격이 너무...
내가 취미에 돈 아끼는 사람은 절대 아니고,
누군가의 노동력을 싸게 후려칠 생각도 없지만
아니 최소한 갖고 싶은 것을 사야 하지 않나.
다이어리 커버는 필요에 의해 사는 것도 아니고, 취미 때문에 사는 건데! 취향을 저버린다는 건 너무 웃기잖아ㅠㅠ 취향 없는 취미 뭔데요ㅠㅠ
때마침 호보니치 2025 플래너가 우수수수수수 쏟아졌으나, 음... 글쎄요..
며칠에 걸쳐서 아마존, Esty, 인스타그램, 그외 각종 문구 사이트, 공예 사이트를 다 뒤졌는데
없다…
그래서 만들었다 ㅋㅋㅋㅋㅋ
내가 이 전문가들/회사들 보다 잘 만드니까 만들자!! <아니다
어차피 취향에 맞는 걸 살 수 없다면 돈이라도 아끼자 <이거다
 
나는 바느질이라면 2년에 한번 정도, 단추 떨어지면 다는 정도로만 한다.
내 손이 똥손이라는 걸 알기 때문에,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엄청 돌렸다.
바느질 하는 순서 같은 건 96년 쯤에 가정시간에 배운 게 전부라, 기억 날리가 없다.
머리로((만)) 구상을 꼼꼼히 하고... 그냥 한다!

일단 재료를 준비한다.
폴리프로필렌 재질의 에코백이다.
내가 제일 아끼는 거라 부들부들 떨면서 해체했다.
절대 실패해서는 아니된다... 너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으리...!!
실밥을 조심히 뜯고, 물티슈로 닦아냈다.
그리고 다림질을 좀 해줬다.
녹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다리미 온도를 폴리에스테르에 맞춰서 면티 밑에 깔고 살살 달래줬더니, 위의 사진 보다는 좀 펴졌다.
어차피 빳빳해지길 바라고 다림질 한 건 아니고, 에코백 하단부랑 연결되는 부분의 굴곡이 너무 심해서 그것만 펴야지 하는 마음이었다.

사이즈에 맞게 재단한 후의 사진인데, 느낌표의 점 부분을 보면 나름 다림질의 보람이 느껴진다.
생각했던 것보다 에코백이 작아서 조금 부족했지만... 이래서 사람이 미리 도안도 그리고 하는 거겠지만...
그래도 그냥 한다..!! 용맹한 여성은 무를 뽑았으면 칼이라도 잘라야 하기 때문이다.
꾹꾹 눌러서 접으면 접혀서 천보다 훨씬 편하다. (라고 생각하는 똥손)

구상한대로 조합해봤다.
시침질을 해놓으면 좋겠지만, 구멍이 뚫리면 수복이 안되기 때문에 찝게로 찝어놓았다.
요때까지만해도 가름끈으로는 13년 째 아끼고 있는 코끼리 북마크를 붙일 생각이었다. 아니 역시 너무 아까워서 안되겠다!!!!! 하고 말았지만. (아마 망할 걸 예감했는지도 모르겠다)
여기까지 하고 나서 좀 푹 쉬었다 ㅋㅋㅋㅋ
한번 구멍이 뚫리면 낙장불입이라, 박음질은 딱 한번! 원샷에 성공해야 한다.
날 위해 사망한 에코백을 기리며 숨을 가다듬었다.
나의 똥손에 기를 불어넣었다.
엄마가 해주면 참 좋겠다고 생각하는 4n세...

그렇게 숨을 고르고 겨우 시작했는데, 예상치 못한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우리집 미싱(1920년생)이 여러장 겹쳐진 폴리프로필렌의 두께를 버티지 못하는 것...
사진을 첨부할까 했는데, 생각 하는 사이에 몸이 미싱을 정리해버리는 바람에... ㅋㅋ아무튼 엄청 옛날거다.
손으로 돌리는 부분의 나사가 헐거워져서 작업중에 틈틈히 조여줘야 하는데, 두꺼운 부분을 하면 저항이 세서 확 하고 풀려버린다.
그러다보니 헛발질을 하다가 사진 같은 결과물이 나와버린다.
관둘까 하다가, 다시 (반복) "여자가 무를 꺼냈으면 칼이라도 잘라야!!"를 외치며 두꺼운 부분은 수작업으로 해야겠다고 작전을 바꿨다.
무리를 시킬 수는 있긴 했는데, 돌아가신 할머니가 아끼시던 거라, 망가뜨리면 엄마가 울겠다 싶어서 말았다.
그래서 구멍 뚫리면 낙장불입이야!!!! 했던 것이 무색하게, 여러번 풀렀다, 다시 박음질을 반복했다.

덕분에 무수한 구멍.... + 기계가 박은 반듯한 재봉선과 아닌 똥손 수동 재봉선의 혼재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러나 뭐.
아무튼 완성했다.
무로 칼은 못썰었지만, 뭐.
모로가도 서울로만 가면 된다 아닌가.

생각보다 괜찮지 않은가!?!
Indigo 로고가 거꾸로 된 게 좀 거슬리지만, 좌철이라 어쩔 수 없다. 뭐, 돈 한푼 안들었는데 (에코백은 받은거라 ㅋㅋ) 이 정도면 대성공이지.
ogipu! 라고 우겨보자.
나름 가름끈에 보조주머니도 있는 실용성!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전문가들이 만든 것보다 내가 예쁘고 꼼꼼하게 더 잘만드니까 내가 만들겠어!!"가 아니라
"어차피 내 취향이 없다면 돈은 쓰고 싶지 않다"가 목적이었으므로, 목적은 120% 달성했다고 할 수 있다.

노트를 넣으면 이렇게 된다.
마음에 드는 노트커버를 발견해서 바꿀 수 있으면 좋겠다. 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