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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맘대로 리뷰] 만년필 쓰기 좋은 종이 추천

생강젤리 2024. 9. 6. 16:48

아무도 오지 않는 혼자 쓰는 블로그에, 최근 유입이 하나 있어서 봤더니 “만년필 글씨 쓰기 좋은 종이”로 검색해서 들어온 분이 계셨던 것 같다.
지금은 Quo Vadis에 정착했지만, 여기에 이르르기 전에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헤매었던가.
누군가가 나와 마찬가지로 헤매고 있다면 도와주는 것이 강호의 도리! (아무말)

로디아 (Rhodia)
처음 만년필을 구매할 때, 만년필에 좋은 종이라고 해서 샀었다.
그리고 그 노트를 아직도! 가지고 있다. 왜냐면 다 안써서…
지금까지 썼던 종이 중 체감상 가장 두껍고 기름진 종이이다.
마치 종이 위에 얇게 왁스칠을 해놓은 것 같은 느낌이다.
어떤 만년필을 써도 먹먹한, 뭔가 내가 컨트롤 할 수 없는 힘에 의해 쓸려나가는 느낌이 든다.
취향이 있겠지만, 아무튼 나는 먹먹해서 별로 좋아하는 필기감이 아니다.

내가 구입한 로디아가 짝퉁이었다면 모를까, 이 정도의 페더링과 비침인데… 이게 만년필 사용 가능한 종이라고 할 수 있는걸까?
필기감도 영 거시기하고… 아무튼 뭐 그렇다.
로디아는 클레어퐁텐 80gsm을 사용한다고 하는데…
필기감은 80이 아니라 120같다.

미도리 MD
로디아에 충격 먹고 바로 다음 날 구매했던 미도리.

묘하게 거친 느낌이 드는 종이. 수채화 같은 거 그리는 종이 같다. (알못임)
사실 만져보면 맨들맨들 한데 이상하게 그런 기분이 든다.
뒤에 적은 게 있지만 거의 비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오른쪽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가끔 페더링이 생긴다.
날씨가 습한 날에 생기는 건지, EF촉을 사용하면 생기는 건지, 주로 뒷면 종이(양 페이지 중 왼쪽)를 사용할 때 생긴다.
오른쪽 사진의 ‘강동원, ’이정현‘ 등을 적은 펜과 왼쪽 사진의 펜은 같은 펜, 같은 잉크인데 같은 종이에서 저렇게 다른 결과가 나오는 것이다.
미도리를 더이상 구매하지 않는 이유는, 반으로 나눠져있는 구성과 크림색 종이가 싫었기 때문이다.
70gsm짜리 종이라 얇은 편인데, 호보니치처럼 사라락 사라락 하는 느낌은 별로 들지 않는다.

몰스킨 (Moleskine)
아무생각 없이 구매했는데, 구매하고 나니 만년필을 사용할 수 없는 노트라고 하지 않는가.
가격도 있는 편이라 만년필이 안될 거라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만년필이 안된다 안된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로디아 보다는 쓸만하다. 내가 짝퉁 로디아를 구매한 게 아니라면.

판단은 보는 사람에게 맏기겠다.
로디아의 ‘묘하게 페더링 있음’이라고 적은 것과 같은 펜, 같은 잉크이다.
이 정도 페더링과 비침인데, 로디아냐 몰스킨이냐… 음…
둘다 발색이고 뭐고 없는 면도 같고...
나는 최소한 종이라도 사각거리는 몰스킨의 편을 들어주겠다.
왜 로디아는 만년필 친화적 종이라고 하고, 몰스킨은 아니라고 해요? 내가 몰스킨이라면 울었다.

로이텀 (Leuchtturm1917)
가장 오래 쓴, 가장 많이 쓴 노트가 로이텀이다.
아직도 쟁여놓은 새것이 두권이나 있다.
연습으로도 실사용으로도 마음 편하게 쓰기 제일 좋은 것 같다.

보이다시피 뒷장에도 있는데 비침은 거의 없다.
펜을 만년필 이외에도 이거저거 종종 쓰는 편인데, 다양하게 가리지 않고 잘 받아주는 노트이다.
게다가 “아 이거 필기감 영 거지 발싸개 같아서… 버리던가 해야지” 했던 만년필도 이 노트에 쓰다가 정이 든 것들이 있을 정도이다.
필기감이 굉장히 내 취향저격.
종이 넘김도 무난하게 괜찮고, 종이의 광택도 무난하게 좋다.
전반적으로 골고루 균형 잡힌 육각형 느낌이다.
자체 제작의 80gsm짜리 종이를 사용한다고 한다.

호보니치 (Tomoe River)
호보니치의 장점은 셀 수 없다.
종이가 얇고,
만년필도 잉크도 웬만해서는 다 받쳐준다.
내가 가지고 있는 만년필과 잉크는 다 받쳐주는 것 같다.

발색은 발군이라고 생각한다.
믿기지 않겠지만 이 펜과 바로 위의 로이텀에 사용한 펜은 같은 펜, 같은 잉크이다.
빛에 반사 될 때 초록빛이 나는 커피색이다.
가격은 있는 편이지만, 어차피 대부분 그 정도에 형성 되어있는데, 장점을 생각하면 혼자만 유난히 비싼 것도 아니다.
내가 사용한 종이 중에 가장 광택이 있는 종이라고 생각한다.
코팅 된 것 같은 광택인데, 사각거림이 있다.
넘길 때도 바스락 바스락 사락사락 하는 느낌이 아주 일품이다.
하지만 A5 노트를 구매한 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더 구매하지 않고 있다.
플래너 구성이 내 취향이 아닌데다가 쓸데없이 일본 기념일 같은 게 있는 게 싫었고,
플래너가 아닌 노트로써는 딱히 종이가 얇은 매력을 느낄 수 없었기 때문에 (플래너가 바스락바스락 얇으니까 좋은 거지, 필사할 때는 딱히 장점인지 모르겠다)
종이가 얇다는 장점이 빠지고 난 뒤의 호보니치는 대체불가한 제품은 아니라고 느꼈다.
나는 잉크덕후는 딱히 아니라 더 그랬을 수도 있다.
조금 다른 탬플릿으로 나온다면 살 의향은 있다.
종이가 워낙 얇다보니 비침이 있다.

트래블러스 노트북 (Traveler’s Notebook)
미도리와 같은 회사, 같은 종이이다.
커버 때문에 샀다. 내용물은 어디에 처박아뒀는지 모르겠다.

스탈로지 (Stalogy)
호보니치 대체품이라고 해서 사봤다.
종이가 얇은 편이다.
두권이나 샀는데 어디있는지 찾지 못하겠다…
개인적으로는 호보니치보다 낫다고 생각했는데, 찾지를 못하니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 확인이 불가능하네.

무인양품 (Muji)
무인양품에서 나오는 종이가 다양한데, 그 중에 하이퀄리티라고 적힌 종이가 만년필을 받아준다고 한다.
그래서 샀는데, 가격을 생각하면 매우 매우 훌륭하긴 하다.

다만 만년필과 잉크, 그리고 날씨의 영향을 받는다.
특히 날씨를 엄청 탄다.
같은 잉크, 펜으로 써도 건조한 날에는 페더링도 없고 비침도 적다 ㅋㅋㅋ
가격이 저렴하기 때문에 연습용으로 쓴다면 아주 훌륭하다.

쿼바디스 (Quo Vadis)
내가 정착한 종이. (정확히는 플래너에 정착. 노트는 로이텀)

이 잉크+펜은 로디아의 ‘귀찮으니 다 똑같은 펜으로 해보자’와 같은 잉크+펜이다.
사진을 발로 찍어서 잘 안보이지만 붉은 띠가 떠서 예쁘다.
발색도 좋고, 종이의 넘김도 좋다.
펜도 부드럽게 움직이고, 가볍게 사각거림도 있다.
줄의 넓이, 플래너 구성, 뭐 하나 빠지는 것 없이 다 마음에 들어서 정착하지 않을 수 없다.
종이는 클레어퐁텐 90gsm이라, 위에 비교한 것들 중에선 가장 두껍다.
그런데 나는 파라라락~~ 하고 넘어가는 느낌도 마음에 들어서 괜찮다.
재미있는 건 로디아도 클레어퐁텐이고 쿼바디스도 클레어퐁텐인데 둘의 질감도 전혀 다르고, 내 안에서 평가도 극과 극이라는 점이다.
아무래도 로디아 짝퉁을 샀는가봉가….

여기까지가 내가 지금까지 썼던, 쓰고 있는 종이에 대한 지극히 개인적인 후기 겸 평가이다.
어차피 나는 전문가도 아니고..
그냥 내가 글씨 쓰는 게 좋아서 찾아보다보니 이거저거 찝쩍였을 뿐이라.
근데 어차피 만년필, 종이, 잉크 모두 취미와 취향의 범위이기 때문에
결국 다들 직접 겪어 보게 된다고 생각한다.
취향의 종이를 만나도 다른 종이 써 보고 싶고,
최애 만년필이 있어도 다른 만년필 시필 해보고 싶고,
원래 덕질이 그런 거 아닌가.
그런 것까지 전부 취미에 들어가니 말이다.
끗~~~~